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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리포트] 중국은 한국의 전통난방방식인 "온돌"을 왜 자기들 것이라 말하는가?

LifeChallenger 2020. 12. 2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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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

 

 

중국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라 주장하는 것이 근래 들어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한복, 김치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의 전통난방방식인 온돌조차 자신들의 문화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온돌을 자신들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온돌에 관한 내용이 언급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10세기 중반에 편찬된 "구당서"와 "신당서"의 동이열전 고구려편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원문에는 고려(高麗)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新唐書 : 東夷列傳 - 高句麗 : 窶民盛冬作長坑, 熅火以取煖
궁핍한 사람들은 겨울에 긴구덩(장갱)을 파서 숯불을 지펴 따뜻함을 취하였다.

 

舊唐書 : 東夷列傳 - 高句麗 : 冬月皆作長坑, 下燃熅火以取暖
겨울철에는 모두 긴구덩(장갱)을 파서 밑에다 숯불을 지펴 따뜻함을 취하였다.

 

 

어찌보면, 추운 북방지역에 위치한 고구려에서 지나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온돌난방방식이 자연적으로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온돌(바닥)방식의 난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를 5세기 고구려 소수림왕때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구당서"라는 문헌에 기록될 정도라면 온돌(바닥) 난방방식은 이미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보급화되었다고 보는 판단이 지배적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옛 고구려 영토인 만주, 지금의 길림성 통화시 집안현과 연변 등지에서 훠캉(火炕)이라 불리우는 고구려인들의 독창적인 온돌구조가 현재까지도 거의 변형되지않고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www.researchgate.net/

 

 

이러한 고구려의 온돌난방방식은 삼국시대를 지나 신라와 백제에도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남쪽보다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지역에 온돌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의 남쪽지역에서는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인들의 온돌은 어떤 형태를 띄고 있었을까요? 이것과 관련하여 현재 밝혀진 유적을 보면 지금의 온돌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차산 4보루 온돌 세부 모습 : 출처 - 동북아 역사넷 http://contents.nahf.or.kr/

 

 

고구려 아차산 일대 보루군의 온돌형태를 보면, 현재의 온돌형태인 온구들(아궁이가 실외에 있음)이 아닌 부분 난방을 취하는 쪽구들(아궁이가 실내에 있음) 형태입니다. 이러한 부분난방방식의 쪽구들이 발해유적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온돌의 형태는 쪽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온돌형태인 온구들이 등장하게 될까요?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한 서긍에 의해 지필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28 장막류에 있는 와탑(침상)편을 보면 아직까지 쪽구들의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供張] 臥榻 - 若民庶, 則多爲土榻, 穴地爲火坑臥之. 蓋其國冬月極寒, 復少纊絮之屬爾.
서민들은 대부분 흙 침상인데, 땅을 파서 불구덩이[火坑]를 만들고 그 위에 눕는다. 고려는 겨울이 매우 추운데다 솜옷[纊絮] 같은 것이 적기 때문이다. 

 

고려도경에서 두가지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구당서의 온돌표현인 장갱(長坑)이라 하지 않고 화갱(火坑=火炕)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현재 중국인이 온돌을 지칭하는 화갱이라는 단어가 고려시기에도 존재했으며, 둘째, 고려의 쪽구들 형태의 온돌이 중국에 존재하는 화갱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에 사용하고 있는 온구들형태라면 그 차이점을 밝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서긍이 고려를 방문하던 1123년까지는 쪽구들 형태의 온돌이 변형되지 않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후기인 1328년에 지어진 양주 회암사지의 유적에서 온구들형태의 온돌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때를 전후로 온구들형태의 온돌문화가 등장한 것이 아닐까요? 또한, 18세기 조선후기의 인물인 성대중이 지필한 청성잡기(靑城雜記) 4권 성언(醒言)편을 보면 조선중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온돌이 대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자점(金自點)) - (1588년-1651년)

 

煙突之盛,亦自自點始。古者,屋盡軒也,大屛厚茵,以禦寒濕,而獨置一兩間突,以處老病。仁祖時,都城四山,松葉堆積,失火者屢,上以爲憂。自點乃請令五部舍,各說突,專爲去松葉也。人皆喜暖,靡然從令,未幾,一國效之
연돌(온돌)이 유행하게 된 것도 김자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옛날에는 방이 모두 마루여서 큰 병풍과 두꺼운 깔개로 한기와 습기를 막고 방 한두 칸만 온돌을 설치해서 노인이나 병자를 거처하게 하였다. 인조(仁祖) 때 도성의 사산(四山)에 솔잎이 너무 쌓여 여러 차례 산불이 나자, 상(上)이 이를 근심하였다. 김자점이 이에 오부(五部)의 집들에 명해 온돌을 설치하게 하자고 청하였으니, 이는 오로지 솔잎을 처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따뜻한 걸 좋아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이 명령을 따라 얼마 안 가서 온 나라가 이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렇듯, 한국의 온돌역사는 문헌이나 유적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중국은 이러한 한국의 고유한 전통난방방식인 온돌을 자기들의 것이라 말하고 있을까요? 우선, 그들이 주장하는 논거를 찾아보았습니다. 

 

 

火炕是北方人的"暖床"。尽管北方城市楼房中,大部分已没有炕,而只有床了,但炕的出现却比床要早很多。张国庆曾在他的"北人尚炕习俗的由来"一文考证,《新唐书·高丽传》载:"(其人)冬月皆作长炕,下燃温火"。并据此断定,高句丽人发明了炕。然而实际上中国火炕起源高句丽这种观点是错误的,炕是由我们汉族人发明的,我国考古发现一处西汉时期的火炕,将火炕的历史提前到了2000多年前:
온돌(훠캉)은 북방 사람들의 "따듯한 침상"이다. 북방도시의 건물에는 대부분 온돌이 없고, 단지 침상만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온돌(캉)의 출현은 침상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장국경이 일찍이 자신의 "북방인의 일상온돌습관의 유래"에서 고증하였듯이, "신당서고려전"에 "(그 사람들은) 겨울에 모두 긴구덩을 만들어 그 아래에서 불을 지폈다"라고 기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구려인들이 온돌(캉)을 발명하였다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의 온돌(훠깡)이 고구려에서 유래되었다는 이러한 관점은 틀린 것이며, 온돌(캉)은 우리 한족인에 의해 발명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고학이 서한시대의 온돌을 발견하였으며 온돌(훠캉)의 역사는 이미 2000년전에부터 제기되었다.

 

요약하자면, 그들의 주장은 온돌의 역사가 고구려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이미 2000년전인 서한시대에도 온돌이 있었음으로 반대로 중국에서 고구려로 전파된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한은 전한이라고도 불리며 기원전 202년부터 기원후 8년을 말합니다. 앞에서 언급된 서한시대의 온돌(훠캉)은 하북성문화유물연구소에서 2006년 4월부터 11월까지 하북성 서수현 동흑산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발견됩니다. 이때부터, 중국인들에 의한 온돌의 고구려전파설이 나오게 되면서, 온돌문화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논쟁이 2006년부터 활발히 시작됩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던 시기가 중국의 동북공정(2002년부터 2007년까지)시기와 맞물리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요? 

 

 

서수현의 온돌(훠캉) 유적

 

출처 : 구글어스

 

   

사실, 그들의 주장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그동안 온돌에 관해 언급된 문헌인 구당서보다도 앞선 유물이 발굴되었으니, 결국, 중국 북방의 온돌문화가 고구려로 전파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2007년 알래스카 아낙스섬에서 발견된 3000년전의 온돌로 인해, 온돌문화가 알래스카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출처 : http://www.healthyheating.com/

 

 

또한, 비슷한 시기에 몽골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견되고 있는 기원전 3세기경 옥저(沃沮)의 온돌형태는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요? 그들이 자신들의 논리를 주장하려면, 서한시대의 유적보다 앞선 시기에 발견되고 있는 다른 온돌유적에 대해 설명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유적은 무시한 채 오로지 서한시대의 온돌유적만을 주장하며 온돌문화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되풀이하여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20&key=20090320.22032202132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50> 흉노가 좋아했던 옥저인의 온돌

우리 민족 최대의 발명품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온돌은 최근 연해주지역이 조사되면서 그 기원이 옥저였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옥저인들은 현재의 함경도, 간도,..

www.kookje.co.kr

 

 

따라서, 온돌문화에 대한 논쟁은 중국의 훠캉과 한국의 온돌의 차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말해, 쪽구들이냐, 온구들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의 훠캉이 존재하는 지역들이 고구려의 옛 영토와 겹치거나 영향권 안에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중국의 훠캉은 바로 한국의 전통난방방식인 온돌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일부이긴 하지만, 온돌은 전체 난방을 하는 온구들만 해당하고, 부분 난방을 하는 쪽구들은 한국의 것이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중국의 훠캉을 한국의 온돌과 따로 분리하여, 중국식 온돌난방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논쟁의 핵심은 양국이 갖는 온돌양식의 차이가 아니라, 중국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누가 온돌을 발명하였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들의 억지주장에 대해 반박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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