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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한눈에 보는 볼리비아 역사 (독립이전) 본문
이번에 알아보는 나라는 볼리비아이다. 필자가 2013년 4월부터 2016년 4월까지 만 3년을 살다온 지역이기에 보다 생생한 정보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원래는 조지아편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볼리비아에 계시는 교민분을 위해 볼리비아편을 연재하기로 했다.
문명의 시작 - 티와나쿠 문명
기록에 의하면 2000년전에 지금의 칠레 북부와 페루의 남부에 살고 있는 아이마라족이 볼리비아의 서부에 도착하여 정착하기전 볼리비아의 토착민은 코차밤바와 주끼사카지역에 살아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기원전 1200년에 농업을 기반한 작은 마을공동체였지만 서기 400년에 이르러서는 티와나쿠라는 발전된 문명으로 티티카카호수를 기반으로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서기 800년에 이르러서는 제국으로 발전하여 안데스지역의 중요한 세력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기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식량이 감소하고 물부족현상이 발생하자 서기 약 1000년경에 제국은 사라지고 이 지역에는 지배세력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잉카제국의 확장
1438년 잉키제국은 현재의 볼리비아 서부지역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아이마라족은 잉카의 발달된 문화와 그들의 언어(케추아어)를 받아드리게 된다. 다만, 티티카카 호수를 기반으로 하는 원주민은 예외로 그들의 언어인 아이마라어를 사용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 당시 볼리비아 원주민은 잉카의 발달된 농업(계단식 경작)과 기록체계(줄매듭에 의한 기록), 건축술을 배우게 되면서 한층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의 침략
전설의 황금의 땅 비루(Biru)를 찾아 스페인탐험대를 이끌고 1524년 파나마에 도착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태평양연안을 따라 남하하면서
급속히 영토를 확장하던 잉카제국과 조우하게 된다. 이 때 잉카황제 아타후알파는 내부적 요인과 전쟁에 대한 잉카의식으로 인하여 스페인탐험대에게 정복당하고 나중에 개종을 거부함으로써 1532년 11월 카하마르카 전투에 패해 사로잡히고 잉카수도인 쿠스코가 함락당하자 1534년 스페인식민지가 된다.
하지만 인디오에 의해 조직된 차르카스라 불리는 볼리비아의 산악지대(고지대페루(Alto)라고도 불린다)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볼리비아의 점령이 지연되고 내부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인하여 피사로가 승리하지만 뒤에 알마그로의 추종자에 의해 암살당한다. 피사로의 형제인 곤살로 피사로가 볼리비아의 산악지대를 장악하지만 나중에 스페인 국왕에 저항하는 반란세력으로 규정되어 1548년에 스페인은 곤살로를 처형하고 라파스에 식민지정부를 세우고 이때부터 라파스는 중요한 상업 및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1561년 볼리비아의 저지대에 사시에라(지금의 산타크루스)를 건설하고 건조한 차코지역의 점령에 나서지만 원주민 치리구아노의 격렬한 저항에 이 지역은 스페인의 통치기간중 독립된 지역으로 남게 된다.
스페인의 식민통치
볼리비아 포토시의 세로리코(Cerro Rico) 은광은 스페인 왕실의 주요수입원이었으며 이를 유지관리하기 위해 1558년 심의회를 추키사카(지금의 수크레)에 설치하였으며 왕권을 대표하는 코레히도르(시장)이 선출되어 지역을 관할하게 된다. 수크레는 행정중심의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산타크루스와 지금의 파라과이 영토까지 관할하게 되었다.
하지만 18세기에 이르러 유럽발 질병에 취약한 인디오의 인구가 감소하고 광물생산을 증진하기 위한 의무적 강제광산노역인 미타(Mita)의 날짜를 늘리면서 인디오의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이 증가되어 1780년 투팍 아마루 2세의 대반란을 촉발시켰다.
이 반란은 초기에 진압되었지만 봉기는 순시간에 전면적인 혁명으로 바뀌어 페루 및 볼리비아전역으로 번졌으며 1783년 진압되면서 수천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이러한 시민봉기와 당시 유럽에서 번지는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크리오요(신세계에서 태어난 스페인순수혈통)는 스페인의 중상주의에 반대하면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계획하게 된다.
독립투쟁
1807년 나폴레옹의 이베리아반도 침공으로 스페인의 왕조가 교체되자 이는 스페인내부의 권력투쟁을 촉발시켰으며 당시 왕실의 수입원이었던 볼리비아 산악지대인 고지대페루에서의 지방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독립혁명연합(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과 왕당파(페루)간의 전쟁을 유발시켰다. 1824년 아야쿠초 전투에서 왕당파가 패배함에 따라 초대 대통령인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볼리비아공화국이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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