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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코차밤바 물전쟁

LifeChallenger 2018. 9. 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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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볼리비아 코차밤바시는 아직까지 가뭄으로 인하여 물부족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많은 지역이 상수도의 연결이 되지 않아 집집마다 물탱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2000년 당시 발생했던 물전쟁을 회고하면서 오히려 이러한 불편함도 이전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당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코차밤바의 물전쟁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코차밤바 물전쟁의 경제적 배경


1982년 군부독재가 끝나면서 볼리비아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사회혼란으로 인하여 경제가 마비되는 상황을 겪게 되었고 이를 개선하고 1985년 볼리비아 정부는 세계은행을 통한 차관을 받게 되고 이런 지원에 대한 대가로 항공, 통신, 철도 등 민영화를 추진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속에서 1995년 세계은행의 [볼리비아 주요도시의 상하수도 개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년에 걸친 볼리비아 수도인 라파스와 코차밤바의 상수도에 대한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하지만 1997년 코라니호수를 상수원으로 하는 세계은행의 계획과 현지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미시쿠니댐 건설에 대한 의견이 충돌하면서 코차밤바 시정부의 반대로 세계은행이 추진하던 상하수도 개선프로젝트는 코차밤바에서 제외되었다. 


뚜나리아구아스 컨소시엄


세계은행의 지속적인 압박속에서 코차밤바 시정부는 그동안 SEMAPA에 의해 운영되던 물관리사업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 공개입찰을 진행했지만 여기에는 오직 영국과 미국 BECHTEL, 스페인 등으로 구성된 뚜나리아구아스(AGUAS DEL TUNARI) 컨소시엄만이 참여하였을 뿐이다. 이 컨소시엄은 건축토목회사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볼리비아 정부와 코차밤바에 전기, 수도를 제공하기 위한 미화 25억불 투자로 40년간의 소유권을 양도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게 된다. 볼리비아정부는 이 콘소시엄과의 계약조항에 따라 코차밤바시에 있는 모든 수자원에 대한 독점권을 제공하는 LAW 2029(식수와 위생에 관한 법률)를 통과시키면서 민영화에 대한 합법적 근거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 법은 농촌의 관개수로조차도 포함하고 있으며 컨소시엄이 원한다면 독립적으로 지어진 마을우물에도 수도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제정되어 있다. 


수도세 인상



컨소시엄의 주된 관리자는 대부분 토목기술자였으며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현지 시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고, 이로 인하여 수도세 인상을 단행하게 된다. 하지만 1999년 당시 볼리비아의 평균 소득은 미화 100불미만에 불과하였고 각각의 가정에 부과되는 수도세는 20불에 달하였기에 코차밤바시의 대부분 주민들은 수도세를 지불할 수가 없었고 결국 지붕에 떨어진 빗물을 모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LAW 2029의 근거에 따라 컨소시엄이 이 또한 자신들의 독점임을 주장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하게 되었다.  


대규모 항쟁



2000년 1월 오스카 올리베라에 의해 촉발된 대규모시위는 사회각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나 2월 4일 시위대의 가두행렬은 진압부대에 의해 막히고 2일간의 충돌끝에 200명이 넘는 시위군중이 체포되었으며 121명의 중상자를 발생시킨다. 이로 인하여 로마카톨릭교회는 시위대와 정부간의 중재에 나섰지만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사항을 받아드리지 않음으로써 4월에 다시 시위를 진행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시위지도부가 체포되었으나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면서 볼리비아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게 된다. 계엄령의 선포로 군대가 투입되면서 시위는 더 격렬해지며 결국 이 충돌로 2명의 10대 소년들과 중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800명의 경찰이 시위대에 참여하게 되면서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자 볼리비아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조건대로 컨소시엄의 권한을 철회하게 되었다.



국제소송에 휘말린 코차밤바

  

대규모시위로 인하여 요구조건을 수용한 볼리비아 코차밤바 시정부는 2001년 벡텔을 위시한 컨소시엄의 국제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컨소시엄은 계약당시 코차밤바의 물관리회사 SEMAPA가 가지고 있던 부채 2천5백만불을 대신 변제해주었기에 이에 대하여 계약취소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고 국제재판소에서 승소하지만 또다시 시위에 부딪히면서 결국 2006년 볼리비아정부와 30센트로 합의를 보게 된다.



이러한 다국적기업에 대항한 코차밤바의 물전쟁은 후에 2010년 [EVEN THE RAIN]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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