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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한눈에 보는 볼리비아역사 (독립이후) 본문
태평양전쟁의 발발
볼리비아의 7대 대통령인 [안드레스 데 산타크루스] 원수에 이르러 볼리비아는 페루의 내정에 개입하여 페루-볼리비아 동맹을 이끌어 낸다. 그는 잉카제국을 국가의 선조로 선언하여 주변 국가의 반발을 사고 이에 동맹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전쟁초기 동맹군은 주변국을 상대로 승리하였지만 칠레와 페루의 반군에 의해 융가이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볼리비아는 40년간 악성적인 경제적, 정치적 위기속에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로 1879년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가 아타카마 사막의 초석 지대를 놓고 분쟁을 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생하고 1880년 타크나 전투에서 페루-볼리비아 동맹군이 칠레에 패배하게 된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볼리비아는 리토랄주를 잃으면서 볼리비아는 바다로 이어지는 영토를 잃게 되고 내륙국으로 변하면서 더욱더 경제가 악화되고 칠레는 자원이 풍부한 리토랄주와 페루의 타라파카주를 획득하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강국으로 변모한다.
볼리비아의 국민혁명
태평양전쟁이 패배이후 1932년 차코전쟁에서 파라과이에 패한 볼리비아는 막대한 인명과 영토의 손실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하여 기존 지배세력에 대한 반감을 가져왔으며 이에 중산층 정치동맹인 민족혁명운동당(MNR)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막스주의를 거부하고 볼리비아 현실에 적합한 민족주의를 내세워 1952년 볼리비아 국민혁명을 성공시킨다.
이 국민혁명은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아이마라와 케추아인들의 정치참여권을 보장하고 토지개혁과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원주민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1964년 부대통령이었던 레네 바리엔토스에 의해 군사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국민혁명정부는 막을 내리고 군사정권은 반정부세력과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 때,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결별한 [체 게바라]가 남미대륙 혁명운동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볼리비아에 건너왔으나 농민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광산노동자와의 연대에 실패함에 따라 1967년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되어 사살되었다.
1969년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바리엔토스가 죽자 그 후 반복되는 군사쿠데타가 등장하고 1980년 악명으로 이름을 떨치던 [루이스 가르시아 메사]를 마지막으로 1982년에 군사정권은 종식을 맞이하게 된다.
민주주의로의 이행
새로이 대통령인 된 [헤르난 실레스 수아소]는 심각한 사회분열과 약화된 경제의 미숙한 운영, 약한 리더쉽으로 인하여 헌법에 규정된 임기보다 먼저 권력을 내려놓으면서 1985년 [파스 에스텐쏘로]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는 임기기간동안 경제적 및 사회적 안정을 회복하는데 주력하였고 군대는 정치와 멀어졌으며, 주요 정당은 민주주의를 이행하게 된다.
1989년 선거에서 [파스 사모라]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파스 에스텐쏘로]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속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볼리비아는 민주주의 선거가 정착되어 평화로운 정권이양이 되었다. 하지만, 1993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산체스 데 로사다]의 급진적 자본화 정책으로 인하여 볼리비아의 정유회사(YPFB), 전력회사, 통신회사 등 공기업의 소유권이 외국자본에 의해 잠식되면서 극심한 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코차밤바의 물전쟁
2000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권고에 따라 코차밤바시의 상수도 공급의 민영화가 강제되자 일련의 반민영화 항의시위가 발생하였으며 볼리비아 정부는 계엄령을 통해 진압하였으나 계속되는 소요와 시민들의 반발에 다시 국영화로 복귀하게 된다. 2001년 다국적 기업인 벡텔은 볼리비아정부를 상대로 25백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2006년 국제투자분쟁센터에 의하여 벡텔에 유리한 판결이 나자 다시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이에 결국 벡텔은 볼리비아 정부에 대한 소송에서 미화 30센트에 합의함으로써 코차밤바의 물전쟁이라 불리는 소요가 끝나게 된다.
검은 10월
대통령 [우고 반세르]가 페암으로 초기퇴진하자 2002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산체스 데 로사다]가 부정선거로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외국투자자본에 볼리비아의 이권을 넘기게 된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2003년 가스전쟁으로 볼리비아 남부에 위치한 거대한 천연가스 매장지를 둘러싼 분쟁이었으며 군대의 투입으로 인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대규모의 시위로 확산되어 산체스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에보 모랄레스의 장기집권
2005년 12월 MAS당의 에보 모랄레스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최초의 원주민 출신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외국자본에 잠식된 공기업을 국유화시키면서 국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장기집권의 초반을 만들었으며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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