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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역사] 라면삼국지열전 - 천하를 얻다

LifeChallenger 2018. 9. 1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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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기사를 검색하다 2017년 라면 수출액이 사상최대치인 3.8억달러를 기록했다는 관세청의 보도자료를 보면서 라면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블로그나 유튜브에서도 많이 다룬 내용이지만 종합해서 다루기로 한다.



최초의 인스턴트라면은 일본에서 탄생되었다


라면의 시작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청일전쟁이후 중국의 납면(라미앤)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라멘이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던 일본은 미국의 구호물품인 밀가루로 연명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일본에서는 면제품에 대한 산업이 발전하게 된다. 이 당시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가 우연히 찾아간 식당에서 밀가루 반죽을 입힌 어묵을 기름에 튀겨 판매하는 것에 착안하여 1958년 8월 25일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멘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면을 기름에 튀기면 면의 수분이 없어져 건조해지고 이 건조면을 물에 넣으면 다시 수분이 흡수되어 면이 풀어지는 원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당시 치킨라멘은 메밀면이나 우동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된 고가의 제품이었다. 1960년초에 들어 경쟁업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라면은 일본의 국민음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출처 : https://www.nippon.com/en/features/c00512/

 


우리나라 라면의 시작 


1960년 농업인구가 80%를 넘는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는 당시의 식량자급률이 60%에 불과하였고 전후 베이비붐이 겹치면서 매년 40여만명의 새로운 부양인구가 생겨나고 있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1960대초 남대문 시장에서 5원짜리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줄을 서는 시민들을 보고 값싸고 배부른 식품으로 라면개발을 결심한 고 전중윤회장은 일본의 묘조식품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1963년 9월 삼양라면을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인스턴트식 조리법에 익숙치 않는 소비자에게 1년여간의 무료시식회를 통해 겨우 자리를 잡게 된다. 



라면의 대중화


그이후 쌀부족현상과 쌀값인상을 막기 위한 정부의 혼분식장려 정책으로 라면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산업으로 장려되면서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이 많아지게 된다. 농심의 전신이었던 롯데공업의 1965년 롯데라면을 출시를 기점으로, 동명식품의 "풍년라면", 신한제분의 "닭표라면", 동방유량의 "해표라면", 풍국제면의 "아리랑라면", "해피라면", "스타라면" 등이 잇다라 출시되었다.


 

하지만, 당시 시장점유율이 80%에 육박하던 삼양식품의 저가정책에 의해 적자에 허덕이다 결국, 1969년 삼양과 농심의 양자구도로 시장이 형성된다. 


농심의 반격, 양자대결 


1968년 롯데공업은 당시 시장을 선두하던 삼양라면의 아성을 깨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왈순마 라면"으로 출시하지만, 만화가 정운경씨로부터 저작권침해소송에 휘말려 출시후 일년이 되지 않아 상표사용금지 가처분을 받으면서 도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1960년대를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1970년 그동안 닭고기 육수베이스였던 라면에 한국인이 선호하는 소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전략과 대중음식이었던 짜장면을 인스턴트화하는 등의 다변화전략으로 삼양라면을 압박해 들어가게 된다. 이 소고기라면으로 인하여 기존에 10%에 머물러있던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20%까지 끌어오리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1960년말부터 삼양라면 또한 라면산업의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서 컵라면을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던 시기라 롯데공업의 반격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였고, 1972년 3월에 출시한 삼양컵라면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되면서 뒤늦게 소고기육수베이스의 라면을 출시하지만 80%가 넘던 시장점유율이 60%로 떨어지고, 뒤이어 우유라면, 카레라면 등 새로운 다변화정책을 시도하지만 당시 새마을 운동 등 급격한 경제변화로 농촌생활을 그리워하던 사회풍토를 담은 1975년 농심의 히트작 농심라면에 업계의 2인자 자리를 롯데공업에 내어주게 된다.     


이와 같은 약진에 힘입어 롯데라면은 라면산업의 확장을 시도하지만 형인 신격호회장과의 불화로 롯데그룹에서 축출당함으로써 더이상 롯데라는 상호를 쓰지 못하고 1978년 3월 상호를 농심으로 변경하게 된다.




라면의 춘추전국시대


1970년대 라면시장의 양자구도를 형성하던 농심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시장개편을 예고하지만, 예상과 달리 1980년대 라면시장은 대변혁의 시기를 맞게 된다. 1983년에는 팔도의 전신인 한국야쿠르트가 1984년 팔도비빔면과 1986년 도시락으로, 1985년에는 청보식품이, 1986년에는 빙그레가, 마지막으로 1987년에 오뚜기가 청보식품을 인수하면서 1988년에 출시한 진라면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새마을 운동 등 성공적인 경제신화를 쓴 우리나라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자 다양성과 고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도 자연스럽게 낮아진거지. 이런 대변혁속에서 굴지의 1위를 고수해온 삼양라면의 아성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혼란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시장구도는 오히려 사업확장을 시도한 농심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1981년에 안성공장을 건립하면서 출신된 1982년 너구리와 육개장사발면,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등의 연속된 히트작으로 부동의 1위였던 삼양라면을 제치고 1985년 3월 업계 1위로 등극하기 시작한다. 당시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농심 40.4%, 삼양 39.6%, 한국야쿠르트 13.5%로 근소한 차이로 농심이 앞서고 있었다. 




빨간국물의 전성시대 


1980년대 초반이 다양성과 고급화의 싸움이었다면, 중후반은 매운라면의 전쟁이었으며 그 서막은 1986년 농심의 신라면이 열게 된다. "사나이 울리는"이란 카피라이트로 매운 맛을 강조한 신라면은 농심에게 부동의 1위를 고수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다른 라면업계도 이와 같은 유사한 라면을 출시하였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신라면의 아성을 깨는 라면은 나오지 않고 있다.



더욱이 1988년에 히트작 라인에 가담한 사리곰탕면이 출시되면서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50.6%를 기록하여 2위인 삼양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라면업계는 1989년에 발생한 우지파동으로 타격을 받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1위 탈환에 나선 삼양라면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




국내를 넘어 세계로의 도약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은 한국을 세계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1989년 우지파동으로 타격을 받은 국내 라면업체는 1990년대 시장을 다변화를 위해서 본격적인 라면수출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그 시작은 농심으로 1990년대에 중국 상해와 청도에 라면공장을 설립하고 중국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2000년대에는 더욱 확장하여 중국 심양에 공장을 설립하고 미국 LA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시장을 더욱 확대하였으며 이에 삼양과 팔도도 해외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특히, 팔도의 도시락은 부산항을 드나들던 러시아 보따리 상인을 통해 러시아에 알려지면서 1997년 블라디보스톡에 사업소를 개설한 이후 1999년 모스크바에 진출, 2005년에 라면공장을 설립하면서 현재는 러시아의 국민라면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2016년를 기점으로 단일제품으로 매출 2조억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때도 단일제품으로 최고의 매출액은 신라면으로 10조억을 달성하였다.




웰빙과 건면의 등장


2000년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먹거리의 존재와 건강에 대한 의식고조로 인하여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의 판매량이 급감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라면업계는 앞다투어 기존 라면과 차별화된 기름에 튀기지 않는 건면을 출시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가 풀무원이 생라면의 시대라는 슬로건으로 라면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처음에는 생면형식을 취하다 가정내 장기보관의 문제로 건면으로 바뀌어 제품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하얀국물의 반격과 모디슈머의 탄생 


2011년 라면을 맵다라는 기존의 편견에 도전하는 제품이 출시하게 되었는데 팔도의 꼬꼬면, 삼양의 나가사끼짬뽕, 오뚜기의 기스면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하얀국물의 라면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8년 농심의 사리곰탕면이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비록 하얀국물로 대변되는 라면의 인기는 1년이 채 안되어 시들었지만, 이를 계기로 제조사가 정해놓은 조리법이 아닌 소비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조리법이 등장하게 된다. 모디(Modify 수정하다) + 슈머(Consumer-소비자)라는 합성어가 등장하게 된다.  




중화풍 라면의 열풍


2015년에 들어서면서 라면시장의 트렌드는 굵은 면발과 중화풍 라면의 등장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런 열풍의 시작은 농심이 2015년 4월 출시한 짜왕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뚜기의 진짜장, 팔도의 팔도짜장면, 삼양식품의 갓짜장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이러한 중화풍 라면은 중화요리팬인 웍의 원리를 이용한 최신공법으로 색다른 불맛을 구현해냈고, 기존 라면과는 다른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짜장라면으로 시작된 열풍은 짬뽕라면의 경쟁을 유발하였는데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오뚜기의 진짬뽕이었으며 뒤를 이어 농심의 맛짬뽕, 팔도의 불짬뽕이 출시되었다. 이런 중화풍 라면은 다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어 라면의 프리미엄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시기에 수출 또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한국라면의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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