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노마드
[불고기, 넌 어디서 왔니?] ① 불고기의 유래가 된 맥적(貊炙)에 관한 논란에 대해서 본문
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한국음식이 참 그립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구수한 달래향이 나는 달래된장찌개나 돼지고기를 듬성듬성 넣은 돼지김치찌개가 그러한데, 천상 한국사람인 저의 경우이고 보통 외국에 소재하고 있는 한식당을 가보면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음식은 불고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음식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불고기의 유래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불고기의 유래가 된 맥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외국에서는 Korean BBQ로 알려진 불고기의 역사를 알아보면..
불고기는 수천 년 전부터 먹어온 전통 한식으로 조상들의 다양한 지혜가 담긴 바비큐 요리다. 불고기는 얇게 썬 쇠고기를 양념장에 무쳐서 석쇠에 구워 먹는 음식이다. 예전에는 너비아니라고 불렀다. 너비아니란 궁중과 서울의 양반집에서 쓰던 말로 고기를 넓게 저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고기구이는 맥적(貊炙)에서 유래했다. 맥은 지금의 중국 동북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옛날에는 고구려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맥적은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서 불에 굽는 음식인데 석쇠가 나온 이후로는 꼬챙이에 꿸 필요가 없어져서 지금의 불고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후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더욱 융성해져 육식이 식생활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특히 쇠고기를 먹는 관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고려후기대에 중국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불고기, 갈비를 해먹기 시작했다. 그 후 불고기는 조선시대에 와서 궁중요리 너비아니로 발전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불고기 [Bulgogi, 韩国烤肉]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 요리 (맛있고 재미있는 한식이야기, 2013. 1. 2.)
내용을 보면 고구려시대의 맥적이 발전하여 조선시대의 너비아니로 변하고 현재는 불고기로 유래되었다는 맥락으로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이런 맥락으로 불고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불고기의 유래인 맥적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논란이 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 문헌에 나오는 맥적이야기
논란의 중심이 된 문헌은 4세기 동진(東晋)시대의 간보(干寶)가 편찬한 수신기(搜神記)입니다. 제 7권에 보면 맥적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맥적을 적(翟)족의 음식이라 칭하고 있고 이 적족이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지요.
胡床、貊槃,翟之器也。羌煮、貊炙,翟之食也。自太始以来,中國尚之。
호상과 맥반은 적의 기물이고 강자와 맥적은 적의 음식이다. 태시이래로 중국인이 이를 좋아했다
貴人富室, 必畜其器, 吉享嘉賓, 皆以爲先。
귀족과 부자들은 반드시 이 기물을 갖추어놓아 잔치때 손님을 맞이함에 모두들 이와 같이 하였으며
戎翟侵中國之前兆也。
융적이 중국을 침범할 징조이이더라
대충 내용을 보면 "융적의 기물과 음식이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니 이는 곧 융적이 쳐들어올 징조이다"이며 태시(太始)는 한무제 9년의 연호로 기원전 96년에서 기원전 93년까지입니다.(이런 것이 송서(宋書)에 나오는 서진(西晉)의 최초연호인 태시(泰始 265년~274년)로 잘못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적(翟)은 누구이며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요?
당나라 원화 7년인 812년에 임보가 편찬한 원화성찬(元和姓纂)에 나와 있는 기록으로 살펴보면 "적국은 상고시대 중원의 북방에 위치하여 먼 옛날 황제(黄帝)의 후손이 건립한 나라이며 후에 주나라의 제후국이 되었다가 나중에 진(晋)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라고 나옵니다.
위의 원문에 나오는 융적(戎翟)은 어떨까요? 한번 중국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중국소수민족대사전(中国少数民族史大辞典)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있습니다.
狄戎先秦部族或小国名。
적융은 선진시대의 부족 또는 소국명이다
可能是戎人的一支,又作翟戎戎翟。
융족의 지류일 가능성이 있으며 적융 또는 융적이라 불리었다
狄戎原居山西省、陕西省之间,后随周族西迁至渭水流域。
적융은 산서성과 협서성사이에 거주하였으며 후에 주족을 따라 서천에서 위수유역에 이르렀다
春秋时期活动于今甘肃省临洮县一带。
춘추전국시대에는 지금의 감숙성임도현일대에 활동하였다
지금의 감숙성 임도현은 어디일지 구글맵에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중국의 정중앙에서 활동하던 적족에 대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고구려와 연관짓고 있을까 너무도 궁금합니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적(翟)족을 북방오랑캐라고 생각하시어 북적(北狄)이라고 하시던데 그렇다면 기원전 221년부터 기원후 220년의 진한시대에 자리잡았던 화이사상(華夷思想)에 근거한 중화사상에서 서쪽의 융(戎), 북쪽의 적(狄), 동쪽의 이(夷), 남쪽의 만(蠻)로 이미 우리나라가 동이에 속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적(翟)족을 우리나라의 선조인 예(濊), 맥(貊), 한(韓)족과 연관짓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더욱이 수신기가 동진(東晋 317년 ~ 420년)시대이전의 민간설화를 옮겨놓은 이야기책이라는 것에 감안하여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이 없을지 확인해 보니 수신기 제 14권에 부여의 건국신화인 동명왕에 관한 내용이 전해집니다.
槀離國王侍婢有娠,王欲殺之。
고리국왕의 시비가 임신을 하여 왕이 그녀를 죽이려 하자
婢曰:「有氣如雞子,從天來下,故我有娠。」後生子,
시비가 말하기를 "달걀과 같은 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까닭으로 임신을 하게되었습니다"라고 말한 후 아들을 낳았다.
捐之豬圈中,豬以喙噓之﹔徙至馬櫪中馬復以氣噓之。故得不死。
돼지무리에 두었더니 돼지가 숨을 불어넣었으며 다시 마구간에 넣자 말 또한 기를 불어넣은 까닭에 죽지 않았다.
王疑以為天子也,乃令其母收留之,名曰東明。常令牧馬。
왕은 천자라 여겨 그 어미로 하여금 기르도록 명하여 이름을 동명이라 짓고 말을 기르도록 명하였다.
東明善射,王恐其奪己國也,欲殺之。
동명은 활을 잘 쏟았는데 왕은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워 그를 죽이려하니
東明走,南至施掩水,以弓擊水。
동명은 남쪽으로 도망가 엄호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내려치니
魚鱉浮為橋,東明得渡。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동명을 건널 수 있게 하였다.
魚鱉解散,追兵不得渡。因都王夫餘。
물고기와 자라가 흩어지니 추격병은 강을 건너지 못하여고 도읍을 정하여 부여의 왕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왕신화와 비슷하지요? 수신기라는 제목의 책속에서 굳이 동일 부족국가를 적(翟)과 고리국(槀離國)이라 달리 표현했다고는 생각치 못하겠습니다. 고리국의 위치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대략 부여의 북방에 위치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결국 수신기의 기록만 보면 맥적은 분명 고구려의 음식이 아닌 적(翟)나라의 음식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보면 "맥적이 불고기의 원조가 아니다"라는 일각의 주장이 합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맥적이 기록되어 있는 다른 문헌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을 수록하고 있을까요? 수신기보다 앞선 중국 후한(後漢 25년 ~ 220년) 말기에 유희(劉熙)가 지은 사서(辭書)인 석명(釋名) 4권에서 석음식(釋飮食)편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炙炙也炙於火上也
적적이란 불에 고기를 굽는 것이다
脯炙以餳密豉汁淹之脯脯然也
포적이란 얇게 저미어 엿과 콩즙을 꼼꼼히 발라 말린 것이다.
釜炙於釜汁中和熟之也
부적이란 가마솥에 고기를 삶은 것이다
䐄銜也銜炙細密肉和以薑椒鹽豉巳乃以肉銜裹其表而炙之也
함적이란 세밀하게 자른 고기에 생강, 산초, 소금, 콩을 가미하여 가느다란 막대기에 꽂아 굽는 것이다.
貊炙全體炙之各自以刀割出於胡貊之為也
맥적이란 통으로 구워 각자 칼로 자르는 것을 말하며 호맥에서 유래하였다
석명에는 여러가지 고기조리법이 나오며 그중에 맥적이 호맥에서 유래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호맥(胡貊)은 누구일까요? 중국대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호(胡)는 중국고대의 북방이나 서역에 거주하는 민족을 말하며 맥(貊)은 중국고대의 북동쪽에 위치한 민족을 말한다. (주석 : 맥(貊)은 곧 예(濊)이다)
이 내용으로 보면 아마도 맥적은 중국의 북방에 널리 퍼져 있던 통구이의 일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맥(貊) 또는 예(濊)는 우리나라의 선조격이니 고구려를 세운 민족이 맥(貊)이라는 통설로 볼때, 맥적이 고구려의 음식이라는 말이 합당해보이지만 불고기와는 많은 차이가 보입니다.
맥적이 나오는 또다른 문헌은 송나라 488년에 심약이 편찬한 송서(宋書)의 오행일(五行一)에 나오는 구절로써 아래와 같습니다.
晉武帝泰始後,中國相尚用胡床、貊盤,及為羌煮、貊炙。貴人富室,必置其器,吉享嘉會,皆此為先
내용은 수신기의 내용과 흡사하며 단지, 진무제의 태시(泰始)라는 연호(265년~274년)로 바뀌었으며 적(翟)의 음식이라는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또한, 맥적에 관한 문헌으로 전해지는 전한시대 노나라의 고당생이 전한 사례(士禮) 17권을 기초로 만들어진 유교경전인 의례(儀禮)를 살펴보면 제 9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입니다.
記。不宿戒,戒不速。不授幾。無阼席。亨於門外東方。
司宮具幾,與蒲筵常緇布純,
加萑席尋玄帛純,皆捲自末。
宰夫筵,出自東房。
賓之乘車在大門外西方,北面立。
鉶芼,牛藿,羊苦,豕薇,皆有滑。贊者盥,従俎升。
簠有蓋冪。凡炙無醬。
上大夫:蒲筵加萑席。其純,皆如下大夫純。卿擯由下。
上贊,下大夫也。上大夫,庶羞。酒飲,漿飲,庶羞可也。拜食與侑幣,皆再拜稽首
어디에서도 맥적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일부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처럼 凡炙無醬(범적무장)라는 글귀가 보이는데 이것이 석명(釋名)에 나오는 여러가지 구이종류, 즉 적(炙)중 어느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또한, 의례(儀禮)에 대해 후한의 정현(鄭玄)의 주석과 당대의 태학박사 가공언(賈公彦)의 소(疏:해석)이 가미된 의례주소(儀禮注疏)에 보면
[疏]『凡炙無醬』。註『已有鹹和』。
釋曰:雲『凡』者,欲解《儀禮》一部之內,牛、羊、豕炙,皆無醬配之。
雲『已有鹹和』者,若今人食炙然
凡炙無醬에서 범(凡)은 고기의 일부, 소나 양, 돼지 등의 구이에 해당하고 모두 그것과 배합되는 장이 없다고 나옵니다. 已有鹹和(기유함화)이라고 하여 이미 짠 맛이 가미되어있어 지금 사람들이 먹는 적(炙)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醬)이 우리가 현시대에 말하는 양념장이 아니라는 소금과 같은 조미료임을 말합니다. 또한, 이 해석이 당대의 가공언이 해석을 달아놓은 것으로써 당나라때 먹던 적(炙)이 이전의 것과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 현재의 고기구이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이전의 방식이 지금까지도 전해질 수도 있을겁니다.
지금까지 고구려의 일족인 맥(貊)의 음식인 맥적이 기록된 문헌을 살펴보았습니다.
인터넷에서 나오는 불고기(맥적)에 관한 내용들
[위키백과] 불고기
불고기는 고구려 사람들이 먹던 맥적이라는 음식에서 유래한다는 견해가 있다.
맥적은 된장 양념을 한 고기를 일컬었다. 맥적은 된장과 부추를 사용했으며 철에 따라 달래를 사용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문헌 어디에서도 된장이나 야채를 사용한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맥적(貊炙) : 한대(漢代)의 기록 석명(釋名)이나 위진시대의 문헌인 수신기(搜神記)등에 나타난 기록을 살펴보면 양념을 한 통구이. 필리핀 음식 레촌( lechón)이라고 할 수 있다.
석명이나 수신기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양념을 한 통구이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의례에서는 맥적(貊炙)이 아닌 적(炙)에 관한 내용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서말한 바와 같이 고기조리법인 적(炙)의 여러종류에서 포적과 함적만이 양념을 가미하는 조리법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맥적이 고구려의 음식이라고 주장하게 된다면 이것은 전혀 조미되지 않는 통구이일뿐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불고기
국인들의 조상은 원래 중앙아시아에서 살던 유목민족(일정한 거처를 정하지 아니하고 가축이 먹을 물과 풀밭을 찾아서 이동하는 민족)으로,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에 가축의 고기를 먹는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이 즐겨 먹는 맥적(貊炙)은 고기류를 꼬챙이에 꽂아 불에 굽는 것을 말합니다. 불고기의 원조는 맥적인 이 꼬치구이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맥적이 꼬치구이라는 구절은 어디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석명에 나온 문헌글로 이런 주장을 한다면 맥적이 아닌 함적(銜炙)이 꼬치구이에 가깝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고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고기구이는 맥적(貊炙)에서 유래된다. 맥은 중국의 동북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고구려를 칭하는 말이다. 맥적은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서 직화를 쬐어 굽는 요리인데 석쇠가 나온 뒤에는 꼬챙이에 꿸 필요가 없어져서 지금의 불고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또한 석명에 나온 글귀로 보면 꼬챙이로 꿰어 직화에 굽는 요리는 맥적이 아니라 함적(銜炙)입니다. 따라서, 석쇠가 나온 후에 꼬챙이가 필요없어 불고기가 되었다는 것은 조금 억지가 있어 보입니다. 맥적은 엄연히 통구이이니까요.
[한국콘텐츠진흥원] 불고기
불고기는 간장, 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 후추 등 갖은 양념을 넣어 미리 재워두었다가 뜨거워진 불판에 구워 먹는 음식으로 고구려시대의 고기구이인 맥적(貊炙)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맥(貊)이란 고구려를 지칭하는 말로"맥적은 미리 조미해둔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맥적(貊炙)’은 고구려인이 즐기던 불고기[炙]를 일컫는 것이다. 3세기경 중국 진(晉)나라 때의『수신기(搜神記)』에는 맥적을 만들 때 ’장(醬)과 마늘로 조리하여 불에 직접 굽는다’고 하였으며,『의례(儀禮)』에는 ‘범적무장(凡炙無醬)’이라 하여 ’적(炙)은 이미 조리되어 있으므로 먹을 때 일부러 장에 찍어 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이 맥적이 고구려로 계승되어 오늘날 ’불고기’의 원조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도 함적(銜炙)을 맥적(貊炙)으로 둔갑시켜 적용하고 있습니다. 수신기에 있는 글조차도 장과 마늘로 조리하여 불에 직접 굽는다고 말합니다. 다시한번 수신기에 나온 글을 볼까요?
胡床、貊槃,翟之器也。羌煮、貊炙,翟之食也。自太始以来,中國尚之。
호상과 맥반은 적의 기물이고 강자와 맥적은 적의 음식이다. 태시이래로 중국인이 이를 좋아했다
貴人富室, 必畜其器, 吉享嘉賓, 皆以爲先。
귀족과 부자들은 반드시 이 기물을 갖추어놓아 잔치때 손님을 맞이함에 모두들 이와 같이 하였으며
戎翟侵中國之前兆也。
융적이 중국을 침범할 징조이이더라
어디에도 "장과 마늘로 조리하여 불에 직접 굽는다"는 말이 없습니다. 의례에 나와있는 범적무장(凡炙無醬)이란 것 또한 석명에서 말한바와 같이 적(炙)의 종류가 많아 이것이 굳이 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글을 적용하고 있을까요?
여러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작성한 콘텐츠를 보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저만 그런 것일까요?
최남선의 [고사통]
인터넷에 보면 육당 최남선 선생의 1943년에 간행한 [고사통(故事通)]이 불고기의 유래에 대한 기초가 되었다고 언급하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최남선의 [고사통]에 대해서 원문을 보려고 했지만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찾게 된다면 다시 보충할 예정입니다.
맥적과 불고기의 상관관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맥적은 고기를 양념해서 구워먹는 불고기와는 차원적으로 다른 음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또는 이민족에게는 이러한 조리법이 없었을까요?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중국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농서이며 북위(386년~534년)의 고양태수 가사협에 의해 저술되었으며 편찬연도는 대략 532~549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이 제민요술의 적법(炙法)에 보면 다양한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炙豚法:
用乳下豚極肥者,豶、牸俱得。擊治一如煮法,揩洗、刮削,令極淨。
小開腹,去五藏,又淨洗。以茅茹腹令滿,柞木穿,緩火遙炙,急轉勿住。
<轉常使周匝,不匝則偏焦也>
清酒數塗以發色。
<色足便止> 取新豬膏極白淨者,塗拭勿住。若無新豬膏,淨麻油亦得。
色同琥珀,又類真金。入口則消,狀若凌雪,含漿膏潤,特異凡常也。
捧炙:〈或作俸〉
大牛用膂,小犢用腳肉亦得。
逼火偏炙一面,色白便割;割遍又炙一面。含漿滑美。
若四面俱熟然後割,則澀惡不中食也。
腩炙:〈腩,奴感切〉
羊、牛、麞、鹿肉皆得。
方寸臠切。蔥白研令碎,和鹽、豉汁,僅令相淹。少時便炙,若汁多久漬,則肕。撥火開,痛逼火,迴轉急炙。
色白熱食,含漿滑美。若舉而復下,下而復上,膏盡肉乾,不復中食。
肝炙:
牛、羊、豬肝皆得。臠長寸半,廣五分,亦以蔥、鹽、豉汁腩之。以羊絡肚𦠐〈素干反〉脂裹,橫穿炙之。
牛胘炙:
老牛胘,厚而脆。
剗穿,痛蹙令聚,逼火急炙,令上劈裂,然後割之,則脆而甚美。若挽令舒申,微火遙炙,則薄而且肕。
灌腸法:
取羊盤腸,淨洗治。
細剉羊肉,令如籠肉,細切蔥白,鹽、豉汁、薑、椒末調和,令鹹淡適口,以灌腸。兩條夾而炙之。割食甚香美。
《食經》曰作豉丸炙法:
「羊肉十斤,豬肉十斤,縷切之,生薑三升,橘皮五葉,藏瓜二升,蔥白五升,合擣,令如彈丸。
別以五斤羊肉作臛,乃下丸炙煮之,作丸也。」
𦢸炙豘法:
小形豘一頭,𦢸開,去骨,去厚處,安就薄處,令調。
取肥豬肉三斤,肥鴨二斤,合細琢。魚醬汁三合,琢蔥白二升,薑一合,橘皮半合,和二種肉,著豬上,令調平。
以竹丳丳之,相去二寸下丳。以竹箬著上,以板覆上,重物迮之。
得一宿。明旦,微火炙。以蜜一升合和,時時刷之。黃赤色便熟。先以雞子黃塗之,今世不復用也。
擣炙法:
取肥子鵝肉二斤,剉之,不須細剉。
好醋三合,瓜菹一合,蔥白一合,薑、橘皮各半合,椒二十枚作屑,合和之,更剉令調。裹著充竹丳上。
破雞子十枚,別取白,先摩之令調,復以雞子黃塗之。唯急火急炙之,使焦,汁出便熟。
作一挺,用物如上;若多作,倍之。若無鵝,用肥豘亦得也。
銜炙法:
取極肥子鵝一頭,淨治,煮令半熟,去骨,剉之。
和大豆酢五合,瓜菹三合,薑、橘皮各半合,切小蒜一合,魚醬汁二合,椒數十粒作屑。
合和,更剉令調。取好白魚肉細琢,裹作丳,炙之。
作餅炙法:
取好白魚,淨治,除骨取肉,琢得三升。
熟豬肉肥者一升,細琢。
酢五合,蔥、瓜菹各二合,薑、橘皮各半合,魚醬汁三合,看鹹淡、
多少,鹽之適口。取足作餅,如升盞大,厚五分。熟油微火煎之,色赤便熟,可食。
〈一本:「用椒十枚,作屑和之。」〉
釀炙白魚法:
白魚長二尺,淨治,勿破腹。
洗之竟,破背,以鹽之。
取肥子鴨一頭,洗治,去骨,細剉;酢一升,瓜菹五合,魚醬汁三合,薑、橘各一合,蔥二合,豉汁一合,和,
炙之令熟。合取從背、入著腹中,丳之如常炙魚法,微火炙半熟,復以少苦酒雜魚醬、豉汁,更刷魚上,便成。
腩炙法:
肥鴨,淨治洗,
去骨,作臠。酒五合,魚醬汁五合,薑、蔥、橘皮半合,豉汁五合,合和,漬一炊久,便中炙。
子鵝作亦然。
豬肉鮓法:
好肥豬肉作臠,鹽令鹹淡適口。以飯作糝,如作鮓法。看有酸氣,便可食。
啖炙:
用鵝、鴨、羊、犢、麞、鹿、豬肉肥者,赤白半,細研熬之。
以酸瓜菹、筍菹、薑、椒、橘皮、蔥、胡芹細切、鹽、豉汁,合和肉,丸之。
手搦〈汝角切〉為寸半方,以羊、豬胳肚𦠐裹之。
兩歧簇兩條簇炙之——簇兩臠——令極熟。奠,四臠。牛、雞肉不中用。
擣炙:〈一名「筒炙」,一名「黃炙」。〉
用鵝、鴨、麞、鹿、豬、羊肉。細研熬和調如「㗖炙」。
若解離不成,與少麵。
竹筒六寸圍,長三尺,削去青皮,節悉淨去。以肉薄之,空下頭,令手捉,炙之。
欲熟,——小乾,不著手——豎塸中,以雞鴨子白手灌之。若不均,可再上白。猶不平者,刀削之。
更炙,白燥,與鴨子黃;若無,用雞子黃,加少朱,助赤色。
上黃用雞鴨翅毛刷之。急手數轉,緩則壞。既熟,渾脫,去兩頭,六寸斷之。促奠二。
若不即用,以蘆荻苞之,束兩頭——布蘆間可五分——可經三五日,不爾則壞。與麵則味少,酢多則難著矣。
餅炙:
「用生魚,白魚最好,鮎、鱧不中用。
下魚片:離脊肋,仰捓几上,手按大頭,以鈍刀向尾割取肉,至皮即止。淨洗,臼中熟舂之,勿令蒜氣。
與薑、椒、橘皮、鹽、豉和。以竹木作圓範,格四寸面,油塗絹藉之。
絹從格上下以裝之,按令均平,手捉絹,倒餅膏油中煎之。
出鐺,及熱置柈上,盌子底按之令拗。將奠,飜仰之。若子奠,仰與盌子相應。」
又云:「用白肉、生魚等分,細研熬和如上,手團作餅,膏油煎,如作雞子餅。十字解奠之,還令相就如全奠。
小者二寸半,奠二。
蔥、胡芹生物不得用,用則斑,可增。眾物若是,先停此;若無,亦可用此物助諸物。」
範炙:
用鵝、鴨臆肉。如渾,椎令骨碎。
與薑、椒、橘皮、蔥、胡芹、小蒜、鹽、豉,切,和,塗肉,渾炙之。
斫取臆肉,去骨,奠如白煮之者。
炙蚶:
鐵䥟上炙之。汁出,去半殼,以小銅柈奠之。
大,奠六;小,奠八。仰奠。別奠酢隨之。
炙蠣:
似炙蚶。汁出,去半殼,三肉共奠。如蚶,別奠酢隨之。
炙車熬:
炙如蠣。汁出,去半殼,去屎,三肉一殼。與薑、橘屑,重炙令暖。
仰奠四,酢隨之。勿太熟——則肕。
炙魚:
用小𩼧、白魚最勝。渾用。
鱗治,刀細謹。無小用大,為方寸准,不謹。
薑、橘、椒、蔥、胡芹、小蒜、蘇、欓,細切鍛,鹽、豉、酢和,以漬魚。可經宿。
炙時以雜香菜汁灌之。燥復與之,熟而止。色赤則好。雙奠,不惟用一。
워낙 장문이라서 일일이 해석해 드릴 수는 없지만, 대략 고기류(생선류, 가금류, 육류)의 조리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상세하게 어떤 양념이 사용되어지는 나와있습니다. 간략히 양념이나 밑간에 관한 내용만 소개하자면...
적돈(炙豚) : 돼지기름이나 참기름, 또는 청주를 발라 떡갈나무에 꿰어 은근한 불로 고기를 돌리면서 굽는 방식
남적(腩炙) : 육류에 소금과 시즙(콩을 쑤어 만든 소스)을 바르고 불에 가깝게 하여 돌리면서 굽거나 고기를 썰어 귤피, 술, 어장즙, 시즙, 파, 생강으로 만든 양념에 담근 후 굽는 방식
관장(灌腸) : 양고기를 소금과 시즙, 총백(파의 흰색부분), 생강, 산초와 함께 잘게 썰어 창자에 넣고 굽는 방식
박적돈(𦢸炙豘) : 육류에 귤피, 어장즙, 총백, 생강, 꿀과 함께 평평하게 놓고 대꼬치로 꿰어 약한 불에 굽는 방식
담적(啖炙) : 육류에 과저, 죽저, 귤피, 호근과 소금, 시즙, 파, 생강, 산초을 섞어 볶은 후 양, 돼지의 창자로 싸서 굽는 방식
도적(擣炙) : 육류에 과저, 죽저, 귤피, 호근과 소금, 시즙, 파, 생강, 산초을 섞은 후 대나무통 위에 놓고 굽는 방식
이렇듯 제민요술에는 육류를 양념과 섞어 굽는 여러가지 방식의 조리법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문헌을 통해서 맥적에 대해 확인해보았지만 (물론, 제가 모든 것을 다 찾아서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 어디에서도 양념을 하여 굽는다는 글귀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맥이라는 글자를 고구려와 연관지어서 맥적이 양념에 재운 고기를 굽는 것이다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습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맥적은 통구이입니다. 통구이와 불고기, 다소 연관짓기 어려운 상관관계가 있음에도 왜 사람들은 맥적과 불고기를 연관지으려고 할까요?
여러분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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