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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리포트]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 기자동래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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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리포트]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 기자동래설

LifeChallenger 2021. 1. 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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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국인문학

 

안녕하세요. 지식창고입니다. 

 

2017년 4월 초 미중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흘러나온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 (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 라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한국사회를 격분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이 발언이 시진핑 주석 본인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들었다고 전한 말이지만, 일국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발언이 가져올 한중간의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이를 단순히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사안이 너무 중대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부터 이런 발언이 나오게된 배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나라의 지도 - 출처 : 위키백과

 

 

중국이 한반도를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역사적 배경에는 "기자동래설"이 있습니다. 기자동래설이란 중국의 상고시대의 은나라 (기원전 1600경 - 기원전 1046년) 사람 기자가 동으로 와서 백성을 교화하여 고조선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기자라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기자에 관해서 공자가 편찬했다고 여겨지는 [상서]에 덕과 학문이 뛰어나고 어진 이로 기록되어 있을뿐, 그가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무제 (기원전 141년-기원전 87년) 이후, 복승이 [상서]에 주석과 본문을 추가하여 편찬한 [상서대전]에 처음으로 주나라(기원전 1046년-기원전 256년) 무왕이 기자를 풀어주었으나 기자가 조선으로 갔으며, 이를 듣고 그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武王釋箕子之囚. 箕子不忍周之釋, 走之朝鮮, 武王聞之, 因以朝鮮封之. 箕子旣受周之封
무왕은 기자를 풀어주었으나 기자는 주가 풀어준 것을 참지 못하고 조선으로 갔다. 무왕이 이를 듣고 그를 조선에 봉하였다. -상서대전 2권 

 

이런 [상서대전]의 기자동래설을 근거로 이후 중국고문헌에는 기자동래설을 윤색하고 각색하여 마치 중국이 한반도를 문명화시킨 장본인임을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기자동래설에 대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삼국시대이후 고려와 조선은 기자동래설을 고조선의 역사로 편입시켜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시기로 구분하여 인식합니다. 이 당시, 불교를 배척하고 공자의 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는 시기였기에 유교경전에 기록된 현인 기자가 조선으로 넘어와 문명을 교화했다는 기자동래설은 위정자들에게는 유교를 퍼뜨리기에 좋은 구실이 될 수도 있었을겁니다. 결국 유교숭상과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는 기자동래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우리의 역사로 편입시키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기자동래설은 고고학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 더이상 받아드려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고고학적으로 은나라 사람인 기자가 조선에서 문명을 전파하였다면, 당연히 고조선의 영토에는 은나라의 문물이 발견되어야하는데 그러한 흔적이 없다. 둘째, 기자가 조선에 온 시기인 기원전 12세기 혹은 11세기는 고조선이 강대한 시기인데 고조선보다 영토가 작은 주나라가 고조선에 왕을 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 당시 퍼져있던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중국의 변방 국가인 흉노, 서융, 선비, 서강, 왜의 시조를 중국인의 후손으로 왜곡시켜 역사서에 기록해 놓은 것을 보아, 역사적 왜곡이 심했음을 반증하며, 기자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일뿐이다. 

 

이는 중국의 역사학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역사학계는 1970년대에 발견된 다링허 유역의 청동기 유물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기자조선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을 인정하기 시작했을까요? 바로 기자조선에 이은 위만조선, 또한 위만조선에서 갈라진 고구려, 고구려의 전통을 잇는 발해 등의 실질적인 한국사가 중국인들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중국사람인 기자가 한반도에 와서 고조선을 건국하였으니 그 고조선에 뿌리를 둔 나라들 또한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2002년에 시작된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킨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왜 중국은 과거의 역사에 집착하고 있을까요?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며,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간단한 명제에서 중국은 동북공정과 함께 청나라의 역사를 재편찬하는 청사공정이라는 또하나의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청나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청사공정이란 바로 이 영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영토분쟁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역사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이것을 단순한 비약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요? 현재 남중국해에서는 영유권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국측이 내세우는 주장은 기원전 한나라 시대부터 남중국해를 관리했다는 기록에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이 한반도에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기우라고 치부하기에는 중국정부가 엄청난 국가예산을 쏟아부으며 동북공정과 청사공정을 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입니다. 

 

앞서 언급된 내용이 현재 2000년대부터 중국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역사관이며. 이러한 이유로 최근 한국문화를 자신들의 역사라 주장하는 수많은 중국네티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잘못된 역사교육으로 인하여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을 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을 보아왔습니다. 이제는 눈을 돌려, 중국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 새로운 역사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올바른 역사관을 지니고, 그들의 주장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반론을 제기해야합니다. 

 

지금까지 지식창고였습니다.

끝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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