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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리포트] 조선의 또다른 넘사벽 클래스 - 이게 바로 조선의 수학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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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리포트] 조선의 또다른 넘사벽 클래스 - 이게 바로 조선의 수학이다.

LifeChallenger 2021. 1. 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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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픽사베이

 

 

안녕하세요. 지식창고입니다. 

 

수학은 과학의 언어라는 별칭답게 천문, 통계, 회계, 건축 등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고대 국가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고대 왕조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수학체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1895년 이후 새로운 교육제도로 인해 서양수학을 전면적으로 받아드리면서, 수천년간 발전시켜온 전통수학은 사라지고, 현대에 우리는 오직 서양수학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의 전통수학은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서양수학보다 낙후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태된 것일까요? 이 영상은 이런 단순한 의문점에서 시작합니다.  

 

수학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면, 자연스럽게 서양 수학자들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배운 수학용어의 많은 부분이 서양 수학자의 이름에서 따온 경우가 많고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한국의 수학사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피타고라스의 정리, 파스칼의 삼각형, 오일러의 라틴방진, 원주율 등은 이미 동양수학에서 먼저 정립된 수학이론들이라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전통수학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나를 가늠해보기 위해 우선 한국의 수학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때 수학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관리를 채용하기 위한 산학제도를 두어 [철경], [삼개], [구장], [육장]을 가르쳤다고 나옵니다. 여기에서 삼개와 육장의 경우는 중국고문헌에도 보이지 않고 백제가 일본에 전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독자적인 수학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통일신라 때 지어진 건축물도 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도형학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들입니다. 이런 전통수학은 면면이 이어져 고려말기에 중국 수학의 전성기였던 송나라, 원나라의 수많은 수학서적이 도입됨에 따라, 이를 흡수하여 발전하였으며, 조선에 이르러서는 세종에 의해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당시 세종대왕이 추구하던 과학기술에는 기본적으로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하였기에, 그는 대신들로 하여금 수학을 공부하도록 장려하였으며, 산법교정소 및 역산소를 설치하여 수많은 수학자들을 배출하기에 이릅니다.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이 발생하기전 150년동안 조선의 전통수학은 수많은 수학서를 만들어 내며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수많은 수학서들이 소실되거나 일본에 의해 찬탈되어, 현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이 때 찬탈한 조선의 수학서를 바탕으로 [화산]이라는 독특한 일본전통수학이 체계화된 것으로 보아, 당시 조선의 수학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란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이후에도 계속 발전하여 최석정과 홍정하라는 뛰어난 수학자를 배출하게 됩니다. 

 

최석정은 1715년에 그의 저서 [구수략]에서 9차 직교라틴방진의 해법과 10차 직교라틴방진에 근접한 백자도의 해법을 서술하였습니다. 라틴방진의 기본원리에 관해서는 모바일게임 스도쿠를 연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최석정의 라틴방진은 1789년 레몬하르트 오일러의 5차 직교라틴방진보다도 시기상으로 앞서 있으며, 최석정이 풀이한 9차 직교라틴방진은 무려 240여년이 넘은 1959년이 되어서야 인도 수학자들에 의해 깨어지게 됩니다. 또 다른 인물인 홍정하의 경우, 그의 무수한 업적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그의 저서 [구일집]에 설명된 10차 방정식이 있습니다. 1차 방정식이 시작된 기원전 1650년경 이집트를 기점으로 7차 방정식의 해법이 풀렸던 19세기 후반과 비교해보면, 당시 조선의 수학이 얼마나 세계적인 수준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조선시기에는 최석정의 [구수략]에 당대 최고의 수학자로 칭송받던 경선징의 [묵사집]이나 오직 나눗셈과 뺄셈만으로 제곱근을 구한 홍길주의 [숙수념], 일본의 수학자들에게 추앙받던 19세기 이상혁의 [산술관견] 등 많은 수학서들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계적 수준을 가진 조선의 전통수학은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대중화되지 못하고 관료사회에만 뿌리내렸던 전통수학이 갖는 태생적 한계이며,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에 의해 우리나라의 전통수학이 과소평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역사적 왜곡을 통해 학문적 자존감마저 박탈되면서 뒤이은 많은 학자들의 복원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더욱이 역사교육에 있어서도 전통수학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지 않아, 현대에 들어서는 앞서 말한 세계수준의 전통수학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흔히들, 조선의 전통수학을 이산수학의 집합체라고 말합니다. 이산수학은 그래프나 논리연산과 같은 구분된 값을 가짐으로 이산적인 과정을 통해 데이터를 저장하고 동작하는 디지털 분야와 같은 통신 및 인공지능 등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활용도가 높은 분야입니다. 만약, 세계적 수준의 전통수학이 현대로 이어졌다면 아마 지금의 한국은 수학강국으로써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지식창고였습니다.

끝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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