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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리포트]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의 서막 -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누구의 땅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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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리포트]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의 서막 -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누구의 땅인가?

LifeChallenger 2021. 1. 1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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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식창고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나라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작년 9월 27일 코카서스에 위치한 두 나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무력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은 나고르노 카라바흐라는 분쟁지역이 자신들의 조상이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땅이었기에 자신들에게 속해야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상 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누구의 땅이었을까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8세기에 존재하였던 아르메니아 최초의 왕국인 우라르트의 사르두리 2세의 비문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후 페르시아인들이 세운 메디아 왕조, 아케메네스 왕조를 지나 동로마제국의 알렉산드리아 대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에게 점령당하며 기원전 18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르메니아인들이 세운 아르메니아왕국이 해당 지역을 수복하게 됩니다. 

 

출처 : 위키피디어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로마와 페르시아의 틈바구니에 끼어 잦은 침략을 받았으며, 이로 인하여 비록 지금의 아르메니아 지역에는 여러 왕조가 들어섰지만 모두 단명하거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서기 1000년 지금의 나고르노 카라바흐에는 아르차흐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나고르노 카라바흐에는 아르메니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1세기에 이르러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투르크계통의 셀주크왕조가 건립되고, 이란, 터키를 포함한 대다수지역을 점령하게 되면서, 페르시아를 통해 서아시아로 많은 투르크인들이 유입됩니다. 

 

 

출처 : 트위터

 

 

비록 13세기에 들어서 몽골제국으로 인하여 셀주크제국은 쇠퇴하였지만, 셀주크제국의 멸망이후에도 투르크족들은 16세기초 이란을 기점으로 한 사파비 왕조를 건국하여 코카서스 남부를 지속적으로 지배하였으며, 아르메니아계의 아르차흐 공국은 분열되어 군소국가로 전락하게 됩니다,

 

출처 : 지학사

1747년 사파비 왕조의 뒤를 이은 아프샤르 왕조가 멸망하자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는 투르크족에 의해 카라바흐 칸국이 건국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도 아르메니아에서는 이 지역을 아르차흐라 부르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카라바흐라 부르고 있지만, 국제법상 해당 지역이 아제르바이잔에 속하기에 국제언론은 이 지역을 편의상 나고르노 카라바흐라 부르고 있습니다. 당연히 18세기 해당지역의 절대다수를 유지하는 아르차흐 공국과 아프샤르 왕조에서 분열된 카라바흐 칸국은 반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오랜 영토분쟁의 시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서아시아에는 투르크계의 힘이 강성한 시기였기에 어쩔 수 없이 아르메니아인들은 투르크인들과의 공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란의 투르크계 마지막 왕조였던 카자르왕조가 굴리스탄 조약으로 1813년 러시아에 코카서스 남부지역을 빼앗기기전까지 지속됩니다. 

 

출처 : https://www.britannica.com/place/Russian-Empire

 

코카서스 남부를 점령한 러시아 제국은 아르차흐왕국과 카라바흐 칸국을 러시아령으로 편입시키며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는데, 1823년 당시 인구조사에 따르면 카라바흐 지역에는 아제르바이잔인이 78%, 아르메니아인이 22%를 차지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카라바흐에 살고 있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러시아의 지배를 피해 터키의 동부와 이란의 서부로 달아나면서, 러시아제국은 이 지역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아르메니아인들을 카라바흐지역으로 대거 이주시키면서 인구비율은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인구역전 현상은 아르메니아 전역에서 일어났으며,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의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반목을 심화시켰으며, 급기야 러시아제국의 말기인 1905년에 러시아령 코카서스 전역에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학살로 불리는 무력충돌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철저한 앙숙관계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대립은 1917년 러시아제국의 몰락이후에도 계속되어, 1918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여 서로의 민족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서로간의 영토를 넓히기 위한 무력충돌로 이어졌으며, 결국, 1920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전쟁이 시작됩니다.

 

출처 : https://www.deviantart.com/vah-vah/art/Georgia-and-Armenia-1919-2-584982159

 

비록 양 진영간의 전쟁은 소련군에 의해 곧바로 무력으로 진압되었지만, 이때부터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귀속권 문제가 표면에 떠오르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1921년 소련의 코카서스지국은 이 지역의 관할권을 아르메니아로 이관하였지만, 이 결정은 나중에 소련 중앙위원회에 의해 번복되어 아제르바이잔으로 귀속됩니다. 이러한 결정은 비공개로 처리되어 현재까지도 왜 소련이 이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으로 귀속시켰는지 추측만 난무할 뿐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석유자원에 대한 원활한 공급을 받기 위하여 아제르바이잔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정설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련의 결정번복은 아르메니아의 반발을 일으켰으며, 소련이 약화되는 시기인 1988년부터 두 민족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하여 소련의 해체시기인 1991년 아르메니아인들이 대다수였던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구가 아르차흐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하게 되면서,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당시 독립과정에서 내부 권력투쟁으로 인한 혼란이 심화되었던 아제르바이잔은 이 전쟁에 패하여 이 지역은 1994년 휴전상태로 남게되었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사그라들지않고 해를 더해 갈수록 끊임없는 무력충돌이 자행됩니다. 

 

앞서 말한 역사에서 보듯이 아르메니아의 입장에서 보면 셀주크제국의 침략이후 1000년만에 자신들의 땅을 수복한 것이고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 보면 1000년동안 자신들이 거주해오던 땅을 빼앗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그들의 역사를 통해 현재 나고르노-카라바흐가 누구의 땅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세요? 

 

다음 영상에서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이후 내부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아르메니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식창고였습니다. 

끝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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