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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리포트] 표현주의 대표화가인 뭉크 자연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 뭉크의 절규를 둘러싼 화풍논쟁

LifeChallenger 2021. 3. 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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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식창고입니다. 

 

그림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익숙하게 들릴 정도로 [절규]라는 작품은 표현주의 화가인 에드바르 뭉크에 의해 그려진 대표작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실제의 사물들을 묘사하는 자연주의와는 다르게, 표현주의 화가들은 대상의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그속에 인간의 내면을 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뭉크의 절규는 그림 속 인물의 잔뜩 놀란 표정과 두 귀를 틀어막는 절망적인 행동으로 어딘가 불길하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오는 느낌을 표현하였으며, 더욱이 인물 뒤로 보이는 핏빛으로 물든 하늘과 회오리치는 어두운 물결이 어울려져 불안한 심리를 더욱 강조하고 있어, 표현주의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뭉크의 절규가 인간의 절망을 표현한 작품이 아닌 실제 발생한 자연재해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새로운 학설이 주장되고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주장이 받아드려진다면, 절규는 인간의 내면을 묘사한 표현주의의 대표작이 아닌 자연주의의 작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텍사스 대학의 천체물리학과 도날드 올슨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1883년 8월,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섬에서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자연재해를 일으킨 화산폭발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크라카타우 군도 전체를 파괴하였을 뿐만 아니라 크라카타우 군도와 4천마일 떨어진 모리셔스 근처의 로드리게스 섬에서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엄청난 굉음을 포함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 상공의 강력한 해양기류는 공기중에 떠다니는 화산재와 먼지를 순식간에 지구 전역으로 퍼트렸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몇 개월에 걸쳐 화산재로 인해 빛이 굴절되어 석양 무렵엔 서쪽 하늘이 괴이한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1883년 말과 1884년 초, 노르웨이 신문들은 한결같이 하늘에 있는 특이하고 극히 선명한 색상을 포함하고 있는 대기상태가 크라카타우 화산폭발의 잔해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도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런 특이한 형태의 대기현상은 많은 예술가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뭉크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으며, 이를 절규라는 작품에서 표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뭉크의 일기를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가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 1892년 1월 22일 뭉크의 일기중에서 

 

실제로, 올슨 교수는 절규가 그려진 장소인 노르웨이 오슬로 피오르를 방문하여, 이 지역의 남서쪽이 바로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폭발이 발생했던 방향임을 확인하였으며, 이를 통해 뭉크가 당시 화산폭발의 영향을 직접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는 또 다른 증거로 그림 속 인물이 두 귀를 틀어막고 있는 행동을 주시하였습니다. 크라카타우 화산의 폭발음은 히로시마의 원자 폭탄보다 1만 3,000배나 더 소리가 컸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폭발음은 세계 각처에서 확인이 되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에 입각하면, 절규속 인물은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화산 폭발음을 견디지 못하고 귀를 막은 것이며, 마치 절규하는 듯한 폭발음을 들었던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박하는 입장에서 보면, 절규는 1893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1883년 당시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폭발로 인한 북유럽의 특이한 대기상태를 뭉크가 볼 수는 있었겠지만, 이를 기억하여 10년 뒤의 일기에 쓴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에 뭉크의 일기를 역사적 관찰이 아닌 문학적인 관점에서 보아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1890년대 그의 그림들이 고독과 불안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영감을 받아 그려졌던 것을 살펴보면, 1883년의 기묘한 대기상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과도한 억측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논쟁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쟁과는 별개로, 우리가 뭉크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뭉크가 자연으로부터 느꼈던 자신만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절망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을 화폭 속에 담아내고자 노력했고, 이러한 화폭속에 녹아든 그의 개인적인 감정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기에, 세기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탄생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입장에서 보면, 현재에 일고 있는 일각의 주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지식창고였습니다. 

끝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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